천만영화 11편을 미리 알아본 은행
2012년 IBK기업은행은 문화콘텐츠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2013년 문화콘텐츠금융부로 확대·개편했다. 은행원이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과 배우, 장르와 관람 등급을 분석해 영화 투자를 결정하는 독특한 부서다.
2024년 보도 기준으로 이 부서는 영화 129편에 약 692억 원을 직접 투자했다. 당시 역대 천만영화 32편 가운데 11편에 투자했고, 해당 천만영화 투자의 평균 수익률은 176.7%로 보도됐다.
투자 심사에서는 시나리오와 장르, 관람 등급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마지막 가감점 기준이었다.
- 감독이 60세 이상이면 감점
- 30·40대 감독의 데뷔작이면 가산점
- 직전 세 작품이 연속 흥행했으면 감점
- 직전 작품이 실패했으면 가산점
일반적인 투자 상식과 반대로 보인다.
흥행에 연속으로 성공한 감독보다 실패한 감독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만든 사람들은 연속된 성공이 지나친 자신감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반대로 직전 작품이 실패한 감독은 다음 작품을 더 치열하게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것을 ‘실패한 감독이 더 절실하니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IBK가 평가한 것은 감독의 필요가 아니라 다음 작품의 성공 가능성이었다.
과거 흥행 실적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감과 긴장감, 준비 태도처럼 다음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별도의 기준으로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팀장이 배워야 할 핵심은 가산점과 감점의 방향이 아니다.
판단 기준을 결정 순간이 오기 전에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심사역들은 투자회의 당일 이렇게 고민하지 않는다.
“이번 감독은 지난번에 실패해서 안타까우니까 점수를 더 줄까?”
이미 정해진 기준에 따라 같은 항목을 검토한다.
그래서 투자 결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김팀장의 문제도 같다.
평가 마감일이 되어서야 성과, 승진, 근속연수, 팀 분위기를 한꺼번에 저울에 올리고 있다. 기준이 없으면 판단할 때마다 사정이 개입한다.
그리고 사정이 개입한 평가를 구성원들은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