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매몰비용으로 판명된 다음에는 경제적 셈법은 달라져야 한다. 매몰비용이 된 시점 이후에 경제성을 분석할 때는 매몰비용은 더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손실을 혐오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장밋빛이 될 것이라고 믿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자신의 결론에 부합되는 증거만 보려고 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벗어나지 못한다. 의사결정 전문가들은 이러한 오류를 인식하고 냉정해지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과연 매몰비용의 오류가 나쁘기만 할까?
최근 미국 콜라라도 볼더 대학교 리즈 경영대학원(Leeds School of Business)의 제프리 로이어(Jeffrey Reuer) 교수 등의 연구진들은 매몰비용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했다. 비즈니스 전략 전문가답게 로이어 교수는 기업이 매몰비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고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기업이 투자를 멈추는 것이 곧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의미인데, 비록 매몰비용이라 하더라도 계속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역량 저하를 막는 좋은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석유 시추 사업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했다. 석유 시추 사업은 매몰비용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비즈니스다. 시추하는 도중에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매몰비용으로 판명난 후에도 시추를 이어간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은 무엇이 달랐을까?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 오히려 매몰비용으로 판명난 후에 과감히 시추를 그만 둔 조직의 장기적인 수익성이 악화됐다. 시추를 그만둔 조직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뺏기기도 쉬웠고 기술력 등 인적 자원을 유지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에 매몰비용을 감수하고 시추를 이어간 조직은 당장은 어려웠지만, 장기적인 사업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매몰비용이 늘 매몰비용은 아닌 셈이다.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인적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특히 그렇다.
매몰비용이 발생하는 환경적 원인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비즈니스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제대로 계획을 못하고 의도한 대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어렵다. 불확실성이 심화되면 조직은 관련 비즈니스에 투여된 자원을 매몰비용으로 서둘러 결정하는 경향도 높다. 해당 시점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불확실성하에서 매몰비용으로 서둘러 결정하고 비즈니스를 중단하는 경향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회사일수록 더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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